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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5일 현재 이식일로부터 136일째
이 글을 남기는 이유
회복 중이라는 말 뒤에 이런 상태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남기기 위한 기록이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게 될 때,
“아, 이때는 이런 상태였구나” 하고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 글에서는 이런 신체 변화가 내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조금 더 적어보려 한다.
간이식 수술과정 까지의 여정 2회차를 시작한다.
지금까지도 삼성서울병원에 2025년 9월 29일 20일(토)에 입원을 한것까지는 기억에 있는데, 비몽사몽 중환자실에서 깨어났었다.
그러니까..입원한 토요일에 가서 병실에 들어간 이후로 22일 수술하고 깨어난 몇일의 기억이 아직도 생각이 안난다.
그 부분이 깨끗이 빈공백이다.
아마도 무의식적인 반응인거 같은데, 지금 글을 쓰면서 느끼게 되었다. 아~! 내가 그 2~3일의 기억이 없구나...하는.
정기검진일에 삼성서울병원 진료를 받게 되면 담당의사님께 여쭤봐야 할 사항으로 기록해 둬야 겠다.
중환자실에서 아픈지 어떤지도 모르겠고 비몽사몽 몸에 침대에 묶인것 처럼 무겁고, 오른팔에는 링거가 주렁주렁 달렸고, 손은 결박당해 있고...제일 처음 내가 든 생각은 나는 누구지? 여기 어디지? 하는 느낌? 뿐이다.
내가 깨어난듯 보이니 간호사가 다가와서 내가 누군지 물어보고,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물어보고, 여기 왜 왔는지 물어보고, 오늘 날짜가 얼만지 물어보고....끝없는 질문...근데 처음에는 내가 누군지는 알지만,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왜 여기 있는지, 몇일인지...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었다..몰랐으니까.
대답을 못하면 간호사가 알려주었다. 삼성서울병원에 간이식으로 입원했고, 수술이 잘됐고, 오늘이 몇일이라고...
그리고 전담간호사가 아침,저녁으로 교대로 상주하면서 때마다 이 모든것을 다시 물어봤다.
그런데 수면제에 취해 있으면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각도 없는데, 매번 오늘 몇일인지, 어디인지, 왜 여기있는지 물어보면...
내가 누군지, 여기 어딘지 까지는 대답을 할 수 있는데, 마취가 풀리고 3일이 넘게 경과 하면서부터는 그 질문들이 나를 조바심치게 했다.
'내가 그 대담을 못하면 여기 못나갈꺼야!' 하는 생각에.
나중에서야 환자가 의식을 차리면서 소위말하는 "섬망증상"이 없어지는지에 대한 확인차원의 질문이었던거다.
그치만 환자인 내 입장에서는 제일 짜증났던 질문이 오늘 몇일인지를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억지로 잠을 안 자려고 노력하고 있던 내게, 어쩔 수 없이 수면제에 의해 강제로 자야하는 내개, 그 날짜 시점이라는 거는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굴레에 걸린듯한 그런 느낌이 들게했다.
내가 결박당했다는 걸 느낀 순간, 예전 간성혼수로 인해 중환자실에서 결박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도 얼마되지 않은 기억이었다. 8월이었으니까.
수술하고 의식을 되찾고 4,5일쯤 지났을까?
그동안 입원해서 수술하고 깨어나서 하루 또는 이틀이 지났을 때부터는 유동식으로 식사를 시작하자고 의사가 처방을 내렸다.
삼성서울병원의 시스템은 처치관련해서는 매번 다른 전문간호사(표현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또는 레지던트 등 여러 인력이 바뀌면서 처치를 하였다.
유동식을 위한 콧줄 삽입을 하는 것도 그랬던 거 같은데, 처음에는 실패를 했다고 했다. 내가 그 삽입과정을 견디지 못했었는거 같다.
그리고 하루쯤 지나서 다시 시도하러 왔는데, 협박? 비슷하게 하면서 시도를 했다. 퇴원이 늦어 질수 있다고...그럼 참아야지? 하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시도를 했고, 성공을 했다.
그날 이후로 하루 식사 시간마다 콧줄로 주사기로 유동식을 주입시켜 주었다.
시간이 참 더디 흘렀다..
병실은 6인실이었는데, 다섯면의 환자만 있었다.
그리고 병실 주변을 커튼으로 다 막아놔서 옆침상 환자를 볼수도 없었다. 물론 볼 필요도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침대주변을 커튼으로 막아놨고, 다행히 나는 창가침대여서 하늘은 볼 수 있었지만, 경치를 보고 싶어도 일어나야 하는데..그럴수가 없으니..
일어서서 경치를 보면 어떤 경치가 있을지는 상상이 되지만, 그래도 그런 경치라도 보고 싶었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니까..답답하고 답답하고...짜증나고...
우선 그리고 내가 제일 싫었던 것이 대.소변을 내가 가릴수 없다는거.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하고 대.소변을 누워서 봐야하고, 그걸 타인이 처리를 하고 닦고 갈아주고 한다는 것이 참 비참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에서야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인들은 그런다 "환자였잖아"라고.
알지만 아는데, 내가 그걸 못견뎌하는거 하고는 다른점이지 않는가?
그리고 대학병원이든, 주변의 어떤 병원이든 간에 보호자가 직접 환자를 케어할 수 없는 경우 간병인을 쓰게 되는데, 그 간병인들이 모두 다 중국인(조선족)들이다.
나도 그랬다. 나랑 비슷한 또래의 조선족 간병인이었다.
성질도 억세고, 힘도세고.....
환자인 내 입장에서는 간병인이 대.소변을 처리해 주는게 무척이나 비참하고 자존심상하는데....간혹가다가 그런 것에 무신경한 간병인이 있다. 내가 그랬다.
아! 그리고 내가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느낀게 있는데, 병실에 환자들의 성별 구분이 없는거다. 나는 이점이 놀라웠다.
어떻게 성별을 구분없이 병실을 운영할 수가 있는지
외과병동 대부분은 삼성서울병원은 그렇게 운영되고 있었나 보더라.
간경화 합병증의 복수로 인해 입원했을 때는 남.여 환자 구분되어 병실을 썼는데, 여기는 남.여 구분이 없는거다.
그래서 내가 더 비참하고 자존심 상했던거다. 내 바로 옆 침상에 분명 남자환자가 있는것을 알고 있는 잎장에서.
그래서 병실에 있으면서 간병인 때문에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 간병인이 대.소변을 처리할 때, 그걸 다른사람에게 알리듯이 양이 많다는 둥, 변이 넘쳐 환자복을 버렸다는 둥....
그리고 처리할 때도 얼마나 힘이 넘쳐나는지, 이리저리 뒤집어도 내가 버틸힘이 없으니 장난감 뒤집듯이 휙휙하니..그럴때마다 나는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워낙 엄살도 심한편이기는 하지만, 내가 아픈것을 잘 못참는 성격이다 보니....다행이 무통주사라는 것을 맞고 있어서 수술로 인한 통증을 많이 못느꼈지만 그래도 오랜시간 누워있다보니 허리가 아파 움직일 때마다 오는 통증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뭐 그런거 가지고 그렇게 아프다고 하냐고 타박이고..
나중에 남편한테 연락해서 간병인 바꿔달라고..전화하고 문자하고..그렇게 해서 간병인을 다른 간병인으로 바꿔서 퇴원때까지 도움을 받았다.
지금에서야 내가 느끼는 거지만, 그 간병인이 환자를 좀 더 세심하게 생각하면서 하지 않은 것도 있고, 간병인이 그런 생각조차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런데 내가 그 간병인과 그렇게 싸우고 했던것이 수술 후 내 정신이 완전히 나를 지탱할 수 있는 정도로 회복되지 않았던 점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나와 그 간병인간 서로 성격적으로 안 맞거나 그랬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나랑은 안 맞는 사람이었다.
콧줄로 유동식을 제공받다가 식사량을 늘리는데, 우선 콧줄로 공급되는 유동식과 식사로 제공되는 미음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 콧줄제거 후 죽으로 변경하고, 또 시점이 지난 후 준멸균식이라고 해서 일반식과 비슷하게 죽 또는 밥으로 해서 식판에 제공되었다.
간이식 후라도 제공되는 모든 음식이 멸균된 상태...채소도 완전 익힌거, 과일도 통조림과일.
간식으로 멸균우유 또는 두유 그리고 가끔 비스킷 정도
준멸균식이 해제되면 생야채도 먹고, 생과일도 섭취가능하다고 했지만, 나는 퇴원때까지 준멸균식으로 쭈욱 죽으로 식사를 했다.
병원에서 식사교육을 할 때 영양사가 방문을 해서 얘기를 해 준다.
준멸균식과 일반식 시기에 대해서.
지금에서야 더듬어서 글을 쓰니까...생각이 정리되지만 그래도 두서없이 작성하다보니...아..그런상황도 있었고..하는 것들이 또 생각이 난다. 그런 부분은 또 다음에 쓸수 있겠지만.
★ ★ ★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한 글이며, 의료적 판단이나 치료 결정은 반드시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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