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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보

간이식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일지(프롤로그)

by minereva 2026.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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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월 28일 현재 128일째

이 글은 간이식이라는 선택 앞에서,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을 버텨내는 과정에서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써 내려간 첫 기록입니다.

이후의 글들에서는 이 경험을 조금 더 정리해,
하나씩 기록해보려 합니다.
이 글은 그 모든 기록의 출발점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난 이제 한발짝 디디면 60을 바라보는, 강제로 은퇴를 하게 된, 아직은 중년이라고 말하고 싶은 여자다.
20대 후반의 아들이 있으나 결혼을 안했으니 할머니도 아니고, 그러므로 아직은 중년의 나이라고 생각한다. 100세 시대이니까...내가 100세 근처까지 생존할 확률은 매우 낮은편이라 생각하지만.
현재 내가 만나본 간이식을 하신 분 중 가장 오래된 분이 26년째라고 하셨고, 건강관리를 잘 하면 80대까지는 생존할 수 있겠지...?



2026년 1월 28일 현재부터 나의 투병일기를 쓰려고 한다.
내 이 경험이 나와 같은, 나와 비슷한 분들께 도움이 되고, 힘이 되고, 정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와 같은 행운을 아직 만나지 못하신 분들께서 보신다면 마음이 아프시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 또한 내가 여기까지 오게 할 수 있는 고마운 공여자가 없었다면, 아마도 병원에 입원해 있지 않을까....살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한다.
실제 작년 9월22일 간이식 수술이 있던날 전까지 대충 7~8개월쯤 병원을 내 집인양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었고, 생체간이식을 하겠다는 공여자가 있었지만, 솔직히 바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바랬다.
그래서 지금도 미안하고,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내가 이렇게 일기 형식으로라도 글을 남기려고 하는 이유는 걔가 나중에라도 내 생각과 심정과 고마움을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에서 쓰려고 한다. 지금은 보지 않겠지만...


우선 내가 간이식까지 하게 되기 까지의 과정과 중간중간 내가 간염, 지방간, 간경화, 간암 등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잘못알고 있던 정보도 있고, 이미 알고 있던 정보도 있었지만, 다시 정리해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우선 중학교2학년쯤 때 B형간염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B형 간염이라고 해도 활동성만 아니라면, 특별히 약을 처방해서 관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건강만 하다면 별 문제없이 생활하라리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고 나서도 건강검진 등을 하게되면 어김없이 재검을 하라고 했고, 별다른 처방없이 지냈다.

그 후 별다르게 병원과 가깝게(?) 지내지를 않아서 생활하다가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산부인과 의사에게 B형간염 보균자라는 것을 알렸고, 제왕절개로 아들을 출산하면서 아이도 태어나자 마자, B형간염 예방주사를 맞아야 했다. 3번씩이나.
그리고 마땅히 누려야할 엄마젖도 빼앗겼다. 의사가 절대 수유를 금지하여서 바로 모유를 말리는 주사?를 맞았고, 아들은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소젖과 분유를 먹고 자라게 되었다. 딱히 분유나 우유에 거부반응이 없어서 건강하게 자랐고, 안심을 하며 키웠다.
그러나 마음한편에는 나때문에 혹시나 B형간염에 노출될까봐 마음 졸임이 있었지만, 나름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5섯살 무렵 항체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항체가 없다고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으니 다시 B형간염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소아과의사가 얘기를 해서 또 3회 접종을 하고, 중학교쯤 다시 항체검사를 했을 때 의사가 이 나이때까지 몇번에 걸친 예방백신 접종에도 항체가 생기지 않을 경우는 평생 항체없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으니, 더 이상의 백신 접종은 무의미하다고 하여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어 안심은 했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상태다.
지금 아들은 키 178cm에 체중 100kg에 육박하는 육체의 소유자가 되었다. 제 엄마가 마음졸이는 줄도 모르고.
20대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아마도 아시지 않을까?
뭐 어느 나이때 자녀가 부모 마음대로 움직여 줄까마는, 그래도 건강에 있어서는 이제 30살이 되어 가는 나이쯤 되고 제 엄마가 지금 현재까지 온 상황을 봐서라도 스스로 체중조절을 하고 건강에 조심을 하련만, 담배를 싫어하고, 술은 직장에 다니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이 마시지만 않는다는 것 정도로 만족을 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아직까지는...그점은 본인도 알고 있기도 한것 같고.

지금까지 중에서 중2무렵 B형간염 보균자로 판정을 받았을 당시에는 특별한 치료나 관리를 병원측에서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언제였는지 아마도 국내 의료보험체계가 자리잡고 이후 부터 인것 같은데,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B형간염, C형간염, A형간염 등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에 들어가면서, 국내에서 세분화해서 관리를 하니까 국가정기검진만 잘 해서 건강관리 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설령 문제가 있다더라도 병원이나 보건소등에서 건강관리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까지 이르기까지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건강을 망쳐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를 글을 쓰고 알린다면, 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조금이나마 건강에 더 신경쓰시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어떻게 내가 스스로 건강관리를 안해서 몸을 망치게 되었는지를 자진해서 설명을 하자면,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는 "참 미련한 여자군"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건강에 자신하지도 않았지만 건강할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어서 그랬을까 싶다.

그리고 건강과 관련된 내용 중 아주 중요한 질병 중 몇가지는 유전적 요소가 포함된 경우도 많이 있다.
간과 관련된 증상 또한 유전적 요소가 없지는 않은가 보다
우선, 친정엄마도 B형간염 보균자셨고, 간경화로 발전이 되셨고, 끝내는 암으로 10여년간의 긴 투병끝에 돌아가셨다. 벌써 돌아가신지 12년째 들어서고 있다.
그럼에도 이 미련한 딸은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셨어도 저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미련하게.
내가 B형 간염보균자도 약으로 치료 더 이상 증상이 발전되지 않도록, 또는 늦춰지도록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 동네 내과에서 알게 되었었다.
그때 약을 먹고 관리를 했다면 아마도 간이식까지 오는 최악의 상황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도 생각한다. 지나간 후회이지만.

직장생활을 계속하다가 결혼하고 나서도 집에서 살림하는 것 보다는 직장생활을 하는 것을 원했고, 결혼초에는 직장생활 하는 것을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또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던 남편이 아이를 갖게 되면서 그 이후 발생할 여러가지 비용을 생각하니 아마도 부담이었던듯, 맞벌이를 하면 어떨까 하는 눈치아닌 눈치를 주기도 했고, 또한 내 자신이 전업주부보다는 직장생활을 원하고 해서 출산하고 100일 후 부터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었다.
그리고 업무가 다른 일반사무직과는 다른 나름 전문직이었기에 아주 늦은 나이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젊은 친구들은 결혼을 해도 맞벌이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경우가 많지만, 내가 결혼하고 출산할 당시에는 주변에 주부중에 직장생활하는 주부는 나 혼자였던 기억이 있다. 같은 동 아파트에서.

그당시만 해도 아이를 양육하는 것을 양쪽부모님께 요청하는것이 당연시 되지는 않았었고, 맞벌이가 당연한 분위기도 아니었고, 전업주부가 결혼하면 기본값이었던 시기였다.
내가 받는 급여에서 교통비,식비, 통신비 등 몇가지를 빼고는 거의 아이 베이비시터비용, 기저귀.분유 등 비용으로 모두 들어갔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고생하지 말고 집에서 양육에 전담하는 것이 더 좋지 않냐고들 하였지만, 내 생각은 내가 직장생활을 앞으로 아예 안할거라면 모르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그렇다면 내 자리가 없어지도록 1,2년을 방치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전문지식이 있는 능력일지라도 1,2년 후면 뒤떨어지는 전문지식으로 다시는 내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니까 그나마 1,2년 동안 내자리만 지키자는 생각으로 다녔던 시기였다.
경력단절이란 단어가 그래서 생긴것이 아닌던가.
그래서 나는 내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계속했고, 아이가 돐이 지난 시기부터는 또래끼리 생활도 경험하고 해야 해서 어린이집을 보내면서 약간은 부담이 줄었고, 그 이후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봐주셔서 많은 경제적 부담을 덜게 되었다. 엄마는 아이가 5살쯤 됐었으니, 먹을거 챙겨주고 움직이는대로 따라다녀만 준다고 하셨지만, 어디 그럴까.
그래도 엄마 덕분에 무난히 초등학교 입학하고 부터는 약간은 경제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중학교는 의무교육이기는 하지만 따르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어쩔 수 없는 부모입장으로 사교육을 내 아이에게 안 시킬 수 없으니까.

고등학교때는 당시에는 의무교육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던 시기가 아니어서 일년에 4번 3,40만원을 부담했었야 했고, 교복 및 기타비용까지... 아들이 딱히 공부에 많은 관심이(?) 없었던 관계로 대학교를 안가고 바로 직업교육을 받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고 2년을 빡쎄게 다니다가 군대에 갔다오고 현재까지 직장생활을 해서 나름 성인으로 한몫을 하고 있다. 아직은 캥거루새끼지만.
요즘 젋은 애들은, 내 아들 포함 영악해서 독립해서 나가면 자신한테 돌아오는 경제적 부담이 어떤지를 아니까, 독립생각을 안 하는 경우가 많고, 그 중 내 아들넘도 그렇다.

그 와중 건강검진 과정에서 B형간염이 비알콜성 지방간으로 발전을 해서 치료를 해서 관리를 해야 했지만, 무시했고 초기 간경화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매번 생각하지만, 지방간이라고 했을 때/간경화가 시작되었다고 했을때, 이때서라도 늦지 않았었을까? 지금도 생각한다. 미련하게.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중에는 나처럼 생각하고 생활하시는 분들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옛 어른들 말씀을 들어봐도, 주변을 둘러봐도, 건강은 자신하는게 아니라잖는가? 근데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생활한 나 자신을 패줄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픈 생각이다 지금도.


그랬다면 아들녀석에 제 생간을 내개 떼어주겠다고 나서지도 않았거니와, 아들녀석 간을 떼어 간이식을 해서 목숨은 살렸지만, 미안하고 미안하고 고마운 녀석에 대해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를 봐서 건강에 좀 더 신경쓰고, 체중관리 하라고 얘기 하지만, 아직까지는 쇠귀에 경 읽기 인것 같다. 미안하고 고맙고 신경쓰이게.
키는 나보다 더 크고, 몸무게더 더 나가는 넘. 주먹한방이면 끝날 어미가 무슨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으랴.
그 나이때 나 자신도 같은 길을 걸어왔건만.
그래서 내 말은 힘을 잃고 있다 지금은.
그러나 그말에 힘을 깨닫지 말고 제 어미한테 간을 떼어 주었지만, 평생을 건강하게 생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미된 입장에서.

이 기록 이후,
마음을 조금 정리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음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남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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